1. 예상과는 다른 퇴사 이야기. 다닐 만큼 다니신 것 같은데?
작가는 일본인입니다. 중년의 여성입니다. 그리고 싱글입니다. 퇴사했다는 회사는 28년간이나 다닌 회사입니다. 그것도 일본인이라면 누구라도 알법한 회사입니다. 아사히 신문. 일본인이 아닌 나도 알 것 같은 회사입니다.
정년에는 이르지 못한 채 퇴사했습니다. 그렇지만 28년이라는 세월은 참 길다면 긴 세월입니다. 지금 당장 회사를 나오고 싶은 사람들이 참고 삼아서 읽어볼 만한 책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야 회사 다닐 만큼 다니고 질려서 나온 사람의 이야기이니까요. 작가님은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28년 동안 안락하게 잘 다니셨습니다. 소위 대기업에 다니던 사람입니다. 짧고 굵게 있다가 나온 게 아닙니다. 남들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보냈습니다. 넉넉한 월급을 받아서 부족함 없이 생활해 온 사람입니다.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30대입니다. 싱글 남성입니다. 급여가 안정적으로 따박따박 들어온다는 것을 제외하면 보잘것없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급여도 썩 좋지 않습니다. 나와 비슷한 조건의 현대인의 퇴사이야기를 기대했습니다. 근데, 그렇지 않습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퇴사 경험을 기록한 책들을 어느 정도 접해보았는데, 매번 비슷합니다. 하나같이 여유 있는 사람들의 퇴사 이야기입니다. 다들 비슷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자연스럽게 퇴사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경험을 접하다 보면,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힘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다시금 일을 해나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했던 당시의 저로서는 이 책을 읽고 심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퇴사에 대해서 쓰긴 했습니다만, 이 책은 조기퇴사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글자 크기도 크고, 글이 전반적으로 쉽습니다. 분량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작가는 30년 가까이 글을 써온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랜 기간 계획해 온 퇴사에 관해서 글 쓰는 것을 생업으로 삼아왔던 사람이 쓴 책인데, 정말 내용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부실합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퇴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꿀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마음에 남는 글이 몇 줄 있었을 뿐입니다.
2. 정년이란?
작가님의 말에 따르면, 정년이란 어디까지나 회사가 임의로 구분한 물리적인 시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년이 될때까지 아등바등 회사생활을 이어나가야 할지,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백수의 길을 가야 할지, 그것조차 아니라면 자신만의 새로운 일을 찾아서 평생 현역으로 생활할지는 개개인의 선택입니다.
평균수명의 연장은, 우리의 인생에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잘하든 못하든, 그것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의미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모습이 나를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유행하던 말이 있습니다. 부캐. 지금 자신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메인 캐릭터 이외에 부수적인 서브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유행했었습니다. 하기에 따라서는 부수적인 캐릭터가 주요한 캐릭터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세상일은 알 수 없습니다. 개인의 인생도 어떻게 될지는 해봐야 아는 법입니다.
작가는 제안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좋다고 합니다. 내 안에 있는 회사 의존도를 조금이라도 낮추는 시도를 해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나의 평생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나는 정년퇴직을 하는 사람을 내 주변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대기업의 협력사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기업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나이에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만을 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나 또한 언젠가 퇴사를 할 것이고, 그것은 정년이 되기 전일 것이라고 말이죠. 머물던 곳을 떠나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모릅니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회사에 소속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퇴사까지 얼마만큼의 유예기간이 남아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기간 동안에 앞으로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최대한 배워두어야 하는 것만은 알 것 같습니다.
3. 졸업.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 만으로도 평범한 우리들은 영화 속의 주인공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회사는 구성원들에게 쉴 새 없이 당근과 채찍을 휘둘러대니까요. 온갖 경험들을 선사해 주는 곳이 회사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참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월급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에도 끝은 있습니다. 회사 밖에서 혼자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만 하는 시기가 언젠가는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대처하지 못하고, 누군지도 모를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비참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회사의 테두리 안에서 마냥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다듬어보라고 합니다. 회사 밖에서도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퇴사는 퇴사입니다. 나이가 되어서 나가게 되든, 실력이 안 돼서 나가게 되든, 버티지 못해서 나가게 되든 퇴사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좋지 못합니다. 마지못해 쫓겨나는 인상이 강합니다. 나의 퇴사를 졸업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아쉬울 것이 없어야 하고, 이후의 상황이 더 만족스러워야 하겠죠. 남들이 보기에도 그래 보인다면 성공입니다. 그게 멋질 것 같습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도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지탱하고 있습니다. 회사생활의 끝이 인생의 끝은 아닙니다. 아직 갈길은 멉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사귀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퇴사는 가치 있습니다. 그것이 목적일 수도 있겠네요. 아쉬울 것 없이 내 발로 떠나는 것.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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