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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해저 2만리] 1869년의 상상력을 1954년에 영화로 만들다

by 마늘이 2023. 1. 19.

 

1. 오래전에 만든 SF영화.

 

 정말 고대 유물과도 같은 영화였다. 이름을 아는 배우가 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얼굴마저 낯선 사람들만 출연한다. 

 

 시대를 감한하면 정말 잘 만든 영화이다. 수중에서 촬영한 장면도 참 많이 나온다. 순서는 조금 뒤죽박죽이지만 원작 소설에서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을 영상에 잘 담아놓았다. 죽은 동료의 장례를 바다 밑바닥에서 진행하고, 나름의 바다농장을 관리해서 자급자족을 하는 모습은 그냥 책을 읽고 상상했던 것보다 후줄근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느껴졌다. 특히 바다거북을 끌고 가는 장면이 왠지 모르게 웃겼다. 

 

 그렇다고 마냥 좋게 본 것은 아니었다. 대왕오징어가 등장하는 장면은 보기 힘겨웠다. 2023년을 살아가는 사람의 시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영화라고 하기보다는 연극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특수효과가 아닌 분장과 소품으로 촬영한 영상을 보니 오히려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교수와 조수와 작살꾼.

 

 작품에는 서로 다른 유형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교수는 해양생물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러나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없다. 그저 대접받는 사람일 뿐이다. 오히려 네모선장이 지식인이자 전문가가 아닐까? 실제로 그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은 당시의 것보다 한참 앞선 것이다. 바다의 식재료만으로 구성된 만찬을 봐도 그의 지식과 실행력은 압도적이다. 온갖 예술품을 수집해 놓은 그의 방 또한 인상적이다.

 

 네드는 괴물을 잡기 위해 고용된 작살꾼이다. 영화의 초반부부터 주변분위기를 살리는 분위기메이커였다. 비록 하는 일마다 새로운 사건을 불러오는 트러블메이커로 그려졌지만, 바다 한복판에서 납치 감금된 특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능동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행한 것은 그뿐이었단. 작품의 특수한 상황만 아니라면 가장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초지일관 대립하던 네모선장의 생명을 구한 것도 그였다. 노틸러스호가 침몰할 때 그곳에서 키우던 물개도 그를 따라왔다.

 

 조수는 두 사람 사이를 오간다. 기본적으로 교수의 결정에 따른다. 교수의 의견을 지지하지 않는 때조차도 그를 따르며, 무언가 행동을 할 때조차도 다른 누군가에게 의존한다. 절대로 앞장서지 않는 누군가의 조력자 스타일이다.

 

 영화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작살꾼이 제일 밉상이다. 바다 한복판에서 조난당한 것을 살려주었지만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물건을 훔치고, 폭력도 휘두른다. 주의사항도 어기고, 끝내 비밀기지와 잠수함을 잃게 되는 원인을 만들기도 한다.

 

 애초에 고집불통인 사람들 틈에서 살길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던 것일까? 선원들 맘대로 동반자살을 하려고 했을 때조차 순순히 협력해 주는 교수.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일기장을 찾으러 가야 한다던 교수. 선장이든, 교수든, 조수든 고집불통에 답답한 사람들이다. 믿을 사람이 없으면 알아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3.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능동적인 작살꾼. 수동적인 교수. 의존적인 조수.

 나는 이들 중 누구와 닮았나? 일단 작살꾼은 아니다. 가만히 튀지 않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인정하긴 싫지만 조수에 가깝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고 있다. 

 

 작살꾼에게는 뚜렸한 목표가 있다. 탈출하는 것. 그는 식인종의 섬을 통해서 도망치려 했었다. 빈병에 좌표를 찍어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두 행위 모두가 잠수함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든 행위였지만, 애초에 자유롭게 풀어주었다면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다. 탈출 시도는 여려 차례 실패하지만, 결국 성공해서 살아남는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서로 다른 작가들이 자신만의 어조로 제각각 조언을 해준다.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결국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많은 실패를 겪어본 사람들이라고 한다. 실패에도 등급이 있다. 아쉽게 실패한 것과 택도 없는 실패는 엄연히 다르다. 그런 면에서 사고만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작살꾼의 모습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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