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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3000년의 기다림] 무엇을 기다렸다는 것인가?

by 마늘이 2023. 3. 19.

1. 지니는 알리테아만의 환영인가?

 틸다 스윈튼(알리테아 역)은 고대의 설화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노는 아웃사이더였다. 회상 장면을 보면, 혼자 있었을 뿐이었다. 혼자 노는 것조차 만족스럽게 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놀 줄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녀는 이야기를 수집한다. 이야기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그녀 자신의 빈약한 스토리가 적절한 대비를 이룬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밖에서 채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다고 과연 부족한 것들이 채워질까?

 

 그녀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헛것을 본다는 것이다. 기괴한 형상들이 그녀의 주위를 멤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눈에만 보인다. 그런 이유일까? 이성적인 연구자로서, 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것들이 그녀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인지, 실재하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귀신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지니]또한 마찬가지다. 옆집에 사는 두 명의 할머니들과 마주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그렇지만 상대가 이상한 할머니들이다. 알리테아와 옆집의 노인들은 서로가 미쳤다고 여기는 사이다. 의미도 없는 불필요한 대화로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그들의 모습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딱히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마음 쏟을 곳이 없거나, 몰입할 대상이 없으니 남에게 선을 넘는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주인공을 포함해서 세사람 다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두 할머니가 [지니]를 본 것이라 믿지도 못하겠다. 정신병자와 치매 환자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애초에 지니는 주인 이외의 인간들이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3천 년 동안이나 외톨이였다고 했다. 할머니들이 정말 그를 본 것일까?

 

2. 3가지 소원. 소원을 말하는 것도 쉬운것은 아니다.

 고물상에서 구입한 정체불명의 병. 마치 츄파춥스와 같은 무늬가 있다. 실패작인가? 기괴하게 구겨져있다. 믿거나 말거나 지니는 이 이상하고 조그마한 병에서 튀어나왔다. 늘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다. 왜 지니라는 요정들은 헐벗고 다니는가? 몸이 좋아서 인가? 그럴 법도 하다. 남자가 봐도 멋진 몸이었다. 나도 운동해서 몸을 만들면 여기저기서 벗고 다니려나?

 

 영화속에 등장하는 지니는 너무 뻔했다. 3가지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한다. 뻔해도 너무 뻔하다. 다만 어린 시절 보았던 요술램프 속의 지니와는 살짝 다르다. 주인이 지니의 자유를 소원으로 빌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기존의 지니와는 달랐다. 한 대상에게 3가지 소원을 이루어주면 자유를 얻는 모양이다. 어찌 보면 지니의 입장에서 볼 때 난도가 낮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을 못해서 3000년을 홀로 지냈다니 이것도 환장할 노릇이다.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몸짱남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다. 현대사회에 범람하는 소음이었다. 가루가 되어 사라질 뻔한 지니를 살리기 위해 알리테아는 허겁지겁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빌었다기보다는 처분해 버린 것이 맞다. 3가지 소원. 말해 보라고 한들 바로바로 나올만한 이야기는 아닐 텐데, 허무하게 소비되는 것이 우스웠다. 확실한 목적이 있다면, 소원조차 처분해 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3. 판타지 다음은 막장 멜로. 뜬금없는 반전영화.

 영화를 보다가 찝찝한 장면이 나왔다. 지니의 3천년 회상 이후, 주인공이 직접 입에 담은 이야기다.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끝은 항상 비극이라는 것. 이러한 것은 이야기를 수집하는 알리테아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지니를 소유했던 과거의 주인들도 제명에 죽지 못했다.

 

 주인공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지니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 끝을 알고 있음은 물론, 타인의 힘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조차 없었다. 지니로서는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 소원을 억지로 강요해야 하는 웃기는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돌연 그녀가 소원을 빌었다.

 

 사랑하자고 했다. 지니를 상대로.

 

 기가막힌다. 완강히 버티면서, 쓸모없이 영화의 분량만 차지하고, 별다른 의미도 없는 옛날이야기를 하게 만들더니, 갑자기 맥락도 없는 소원을 빌어버렸다. 이게 웬 모태솔로의 발악이란 말인가? 웃긴 것은 3천 년 동안 병 속에서 지내던 방구석 폐인에게는 거부권이 없었다는 것이다. 생판 처음 보는 남자에게 사랑을 요구한다. 웃기지도 않는다. 심지어 상대방은 사람조차 아니었다. 이놈의 소원의 진위여부는 도대체 누가 보증하는 것인가?

 

 과거의 주인들은 3가지 소원을 채우지 못한채 죽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니가 먼저 죽을 판이다.

 사랑하자면서? 그런데 굳이 힘든 거 다 알면서 도시생활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해보는 연애라 뭘 몰라도 너무 모르나?

 애초에 받기만 할 생각으로 가득했었나?

 

 지니는 3가지 이상한 소원을 이루어주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둘은 가끔씩 만나는 모양이다.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애초에 틸다 스윈튼은 주연인가? 지니의 스토리 속 한명일뿐 아닌가? 영화의 프로모션 영상에 낚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보는 환영들은 맥거핀이었다. 떡밥조차 아니었다. 그냥 그랬다. 새로울 것이 없는 뻔한 이야기. 눈이라도 즐거웠다면 그래도 만족스러웠을 텐데, 뭔가 싸다만 똥 같은 불쾌함이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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