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검열과 편집. 나는 무삭제판을 보는 것이 좋다.
재미있다고 추천받아서 보게 된 영화이다. 나름대로 오래된 영화인지라 찾는데 애를 먹었다. 끝끝내 멀쩡한 자막을 구하지 못해서, 보는 것도 애를 먹었다. 그나마도 자막 싱크가 자꾸만 어긋나서 중간중간 맞춰가면서 보느라 피곤하기도 했다.
내가 하고싶었던 말은 다른 게 아니다. 이번에 잘 맞지 않은 자막 덕분에 버벅대면서 영화를 보게 되면서 느낀 게 있다. 해외영화가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많이 난도질당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영상과 자막의 싱크가 자꾸만 어긋났던 이유는 뻔했다. 무삭제판 영상을 개봉당시의 자막으로 보았으니 어긋나는 게 당연했다. 영화 속에 난무하는 음담패설은 여지없이 칼질당한 듯하다. 이래서야 영화가 매끄럽게 이어질 리가 없다. 예전에 TV에서 방영해 주던 영화들이 어딘지 모르게 배경음악과 영상이 뚝뚝 끊겼던 이유가 아마도 이런 것 때문일 것이다.
2.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으로 변장하게 된 사연.
영화의 주인공 케빈과 마커스는 FBI요원이다. 나름대로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흑인 듀오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임무를 제대로 성공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어이없는 실수로 마약판매상을 놓친 두 사람은 조직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입지가 좁아진 케빈과 마커스는 동료들 모두가 기피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호텔 재벌 2세인 윌슨자매의 경호업무다. 두 사람의 경호는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자동차 사고로 윌슨 자매가 사소한 흉터가 생기게 된다. 흉터가 생긴 얼굴로는 나돌아 다닐 수 없다는 이유로 윌슨자매는 예정되어 있는 사교행사의 참석을 거부하게 된다. 또다시 임무를 실패할 위기다.
재벌 2세의 베이비시터 노릇조차 제대로 못한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퇴출이다. 케빈과 마커스는 울며 겨자먹기로 윌슨자매로 둔갑하고 예정된 일정을 대신 소화하게 된다.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으로 특수분장을 하는데...... 대놓고 징그럽다. 세상사람 모두가 안면인식 장애를 가지도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덕분에 영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3. 코미디 영화에서도 배울점은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웃기는 영화였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장남자 콘셉트는 세대를 초월해서 먹히는 것 같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빵빵 터지는 B급 코미디가 마냥 불쾌하지 않았던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여장남자 콤비에게는 목표가 있다. 윌슨자매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교계 일정을 소화하면서 정체를 들키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어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선을 넘는 과격한 수위의 아슬아슬한 행동을 하더라도 선빵만은 날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상대방에게 맞추어서 되돌려주거나 되갚아주는 형태다. 온갖 섹드립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개인의 성적 취향을 문제 삼는다거나 상대방의 약점을 후벼 파는 불쾌한 억지웃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전 남자친구에 대한 미련으로 지질함을 보이면서도,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단장하고, 주변을 맴도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쿨한 인간이 멋있게 보였다. 영화에서 의도한 바와는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농구선수 멋있지 않은가? 본인 취향의 사람과 만나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농구선수가 멋져 보였다. 그 취향에 문제가 있었던가? 아니다. 그저 흑인이면서 흑인을 차별하는 모습이 웃겼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설정마저도 개그일 뿐이다. 철저한 몸관리. 자신의 약점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관대함. 그리고 식당에서 보여준 무서운 인내. 인종은 차별했지만 성별은 차별하지 않던 모습. 배울 것 천지다. 적어도 그 아저씨의 몸뚱이만큼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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