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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상의원, 옷은 권력을 반영한다.

by 마늘이 2022. 5. 25.

1.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남자.

 조선시대. 왕실의 옷을 책임지고 만드는 곳을 '상의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곳의 최고 우두머리의 직함이 '어침장'이다. 어침장 조돌석은 상의원에서 일한 지 30년이 되었다. 수없이 옷을 만들었고, 그의 손은 만신창이가 다 되었다. 그리고 이제 6개월만 더 일하면 드디어 양반의 반열에 오를 예정이다.

 어느 날 중전은 왕의 낡은 면복을 수선하게 된다. 이 면복은 궁녀들의 실수로 일부분이 타버리게 된다. 더 큰 수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남은 시간은 고작 하루뿐이다. 어침장 조돌석은 하루 안에 수선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다. 궁궐 밖에서 바느질 솜씨가 좋기로 소문난 '이공진'이 '판수'의 추천으로 입궐을 하게 되었고, 왕의 면복을 수선하게 된다. 공진은 단 하루 만에 왕의 면복을 완벽하게 복원해낸다. 옷을 입어본 왕은 이전보다 옷이 몸에 꼭 맞는다며 극찬을 하였고, 다음에는 자신의 사냥복도 만들도록 지시를 한다.

 30년간 상의원에서 일해온 돌석은 위기감을 느낀다. 공진이 만들어내는 옷을 인정은 한다. 그의 실력 또한 인정한다. 그리고 독창적인 공진의 작품에 매료된다. 상의원 최고의 어침장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도 알 수 있다. 자신보다 공진의 실력이 한 수 위임을 그는 알고 있다. 옷뿐만이 아니다.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자신은 병법까지 독파한 공진보다 열등하다. 같은 상놈이지만 수준의 차이가 난다.

 하지만 공진은 부와 명예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어침장에 대해서도 그의 노력과 실력을 인정한다. 본인을 드러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깔보는 인물이 아니다. 어침장을 어른으로 존중하고 대접하는 공진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비교적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차원이 다른 천재가 한사람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노력하지만 항상 그 천재에게 뒤처지는 사람이 있다. 마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같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러했다. 조돌석은 이공진에게 항상 열등감과 패배감을 맞보고 있었다.

 

2. 서로 대립하게 되는 두 남자.

 궁궐 안의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왕실의 의복 또한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는다. 조돌석은 임금이 3명 바뀔 동안 상의원에서 일해왔다. 그동안 바뀐 것이라고는 중전이 사용하는 가채의 크기가 전부였다. 모든 옷들은 준비되어 있는 기존의 틀에 맞추어 제작된다. 그렇기에 꼭 맞는 옷이란 있을 수 없었다. 사람에게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옷에 사람을 맞추어왔다.

 임금님이 공진이 제작한 옷에 감탄하고 만족스러워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관료들이 자신의 몸에 맞게 관복을 수선하고자 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예쁘고 편안한 옷을 입고자 하는 이 당연한 인간의 심리는 유교 사회의 신분과 질서를 무너뜨리게 된다. 병조판서의 여식은 궁에 입궐하고 '숙의'의 품계를 하사받는다. 궁궐의 안주인은 중전이고, 숙의는 중전보다 격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청나라의 사신들 앞에서 국모를 배제하고 자신이 주목을 받고자 수작을 부린다. 모두의 앞에서 화려하게 차려입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한다. 하지만 중전이 더욱 기품 있고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함으로써 숙의의 계획이 망가진다. 

 이것은 단순히 중전과 숙의 두 사람 만의 기싸움은 아니었다. 중전의 편에서 의상을 제작한 것은 이공진 이었다. 숙의의 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병조판서의 편에서 옷을 만든 것은 어침장 조돌석 이었다. 어침장은 병조판서에게서 최고의 옷을 만들라는 명을 받았고, 옷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 조금만 버티면 양반이 될 수 있는데 막판에 가서 그게 쉽지가 않다. 결국 조돌석은 이공진의 아이디어를 훔친다. 그리고 훔쳐낸 디자인으로 졌다.

 

3. 열등감이 폭발하는 왕.

 왕은 말했다. 왕이 된 이후에도 궁궐 안에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궁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풀 한 포기조차 자신의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자기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세자였던 형님과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는 갈비를 좋아했지만 형님이 있었기에 한 점도 먹을 수 없었다. 형님은 일부러 고기를 씹기만 하고 뱉어버렸다. 마지막 한 점이 남을 때까지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였고, 고기가 한 조각 남았을 때 형님이 한마디 한다. "너 먹어!" 

 중전은 본래 선왕이었던 형님의 배우자를 간택하기 위해 준비된 후보자였다. 동생이 남몰래 사모하는 여인을 알고 있던 형님은 그녀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의 왕이었던 아버지께 부탁한다. 간택에 선택되지 못한 여성들은 평생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 법도이지만, 결혼하여 본인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한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여인은 동생의 배우자가 된다. 

 왕은 갈비 한 조각에서 권력에 대해 배웠다. 그렇게 좋아하던 중전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왕에게 중전은 형님이 남겨준 고기 한점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왕은 경연장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중전을 보고 다시 중전에게 다가서게 되지만 이공진과 함께 있는 중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왕의 질투가 폭발한다. 중전을 어머니 무덤까지 몰래 데리고 나갔던 것은 이공진 이었다. 정치적인 압력으로 입지가 불안해진 중전의 편이 되어주었던 것은 이공진 이었다. 맘고생을 받아주고 이해자가 되어준 것도 이공진이었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저 방치만 했던 왕이 뒤늦게 질투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장면은 우습기까지 하다. 자기 것이 없고,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더니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병조판서마저 엮어서 사형장으로 끌고 나간다. 왕은 왕이다.

 

4. 결말

 "국법에 따라 참형에 처하라!"

 왕의 권한은 강력했다.

 

 "전하께서는 비겁합니다."

 중전의 마음은 돌아섰다. 죄를 만들어서 누명을 씌우는 왕의 모습에 질렸다. 왕을 위해서 손수 만들었던 속옷은 내다 버린다. 이공진이 자신을 위해서 만들었던 옷은 살려서 후대에 전했다. 

 

 "네놈이 죽을힘을 다해 만들어 놓은 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망치려 했어. 내 꿈. 내 인생을..."
 조돌석은 이공진이라는 이름을 이 세상에서 자신의 손으로 모조리 지워버릴 것이라 했다. 궁궐 안에서 그의 옷을 태워버린 것도 어침장이었다. 이공진이 죽은 이후에 그의 옷들을 태워버린 것도 조돌석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공진이 자신을 위해 만든 옷을 보며 후회하게 된다. 이후 조돌석은 종 6품의 벼슬을 받아 양반이 되었지만, 왕에게 버림받게 된다. 

 

 "그래서 베꼈습니까? 어침장님 손에 부끄럽지 않은 옷을 만드셨으면 합니다."
 이공진은 꽉 막힌 세상에서 너무 많이 나섰고, 너무 많이 튀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이공진은 여러모로 두드러지는 존재였다. 그리고 제거당했다. 이공진의 옷이 세상에 풀리지 않도록 어침장이 직접 흔적을 지웠지만, 이공진의 최고 걸작이 조돌석의 이름으로 후대에 전해진 것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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